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 오인석 옮김
이하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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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는 일본의 황실을 상징한다. 일본인들은 벚꽃보다도 국화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꽃들이 피지 않는 차가운 가을에 홀로 피는 구화는 깨끗하고 청결하고 조용하고 엄숙하고 고귀하다는 생각에서다.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예의바르고 착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을 통해 일본 사람들의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일본 사람들 스스로도 자신들은 앞에 내세우는 얼굴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국화와 칼>은 우리 시각으로 볼 때 어떤 긴요한 것을 빠뜨린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을 서양인이 썼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저작임에 분명하다. 또한, 일본에 대해 상당히 대담하게 이야기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인류학의 생명은 연구자가 직접 현지에 가서 현지인들과 어울려 살면서 그곳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쓰는 것이다. 반면 베네딕트는 현지 조사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베네딕트는 인류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자 않는 자료들, 예컨대 영화, 소설, 잡지나 일본 포로들과의 대화를 통해 일본을 이해했다. 베네딕트를 계기로 인류학의 연구 대상이 대중 문화, 잡지, 신문, 영화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그것도 베네딕트가 남긴 중요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의리義理를 쉽게 이해하지만 서양인들은 의義, 충忠 같은 것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서양인들은 일본인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일본 사회가 가진 종적 관계를 세계에도 적용시키 위해, 즉 세계를 상하 질서의 관계로 재편시키기 위해서라고 보았다. 서양 사람들은 동양의 상하 질서, 종횡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서양의 평등 사상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형제라는 개념이 없고 우리 역시 서양의 평등 개념이 없다.
물론 서양인들에게도 로열티(royalty)라는 것이 있지만 우리의 충忠이란 개념과는 다르다. 서양인들의 인간 관계는 완전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이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베네딕트가 충과 효, 의리, 은혜 사상을 밝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동양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이 은혜 사상을 이해해야 한다. 바로 이 은혜 사상에서 열녀, 충과 효가 나오는 데 동양인들은 은혜 사상을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과 같다'는 것으로 쉽게 이해하지만 서양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동양이 서양의 기독교를 받아들였지만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말은 '자신이 낳은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고 하느님이 주신 것으로서 아이를 열심히 기르는 것은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서양의 차이다.
또한 같은 동양권의 일본은 우리와 많은 것이 같으면서도 다른 점 또한 많다. 그 중에 하나가 일본 사람들은 충과 효를 같은 의식선상에 둔다는 점이다. 충과 효가 대치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일본인들은 둘 중에 충을 선택하지만, 우리는 효를 선택한다. 좀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일본에는 효라는 개념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혹자들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1대 1로 있으면 한국인이 훨씬 우세하지만 집단으로 있을 때는 그 반대이다"라는 말을 한다. 일본인의 강점은 단결을 잘하고 우리는 국가라는 공적인 개념에 충성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일본이 무武를 숭상하고 우리는 문文을 숭상하는 것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는 무보다는 문을, 충보다는 효를 숭상했고 일본은 그 반대였다. 따라서 일본인은 우리보다 쉽고 빠르게 대동 단결하고 천황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까지 내놓았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에 계속해서 전쟁을 일으켰는데, 전쟁은 국민의 의식을 단결시키고 초점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데 유리한 것이었다. 그런데 "도쿠가와가 한국과의 교류없이 막부를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말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우리 도공들과 학자들같이 기술과 학식이 있는 사람은 모조리 잡아가는 바람에 당시 우리 나라는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도쿠가와 막부 이후 일본을 만든 것은 한국에서 잡혀간 포로들의 공이었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고 또한 메이지유신을 거치면서 성공할 수 있었다. 메이지유신 시기에 임금은 시원치 않았으나 유신을 한 관료들은 충성심을 가지고 임금을 잘 받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로부터 백년후에 똑같은 '유신'이라는 말을 쓰게 되는데 내용은 전혀 달랐다.
예들 들어 일본이나 우리 나라에는 동네마다 그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있었는데 일본은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호신이 없었던 면, 군, 읍에까지 새로운 수호신을 만들었다. 그래서 신사를 만들어 정신적인 통일을 했는데 우리는 같은 유신이라는 말을 쓰면서 그런 수호신 같은 것들을 미신이라고 다 철거했다. 그러나 일본은 수천 년 동안 내려온 토착 신앙을 기초로 신토이즘을 만들고, 서양에서 교육 제도를 받아들여 교육칙령을 만들었고, 그 교육칙령을 쓴 사람이 <해석서>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것은 이퇴계 선생의 사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바로 메이지유신 시대의 교육헌장이다. 우리는 그 백년 후에 이퇴계 선생 사상 근처에도 가지 못한 국적 불명의 교육헌장을 만든다.
일본은 거기서부터 우리와 달라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일본보다 백년 늦게 같은 유신이라는 말을 썼지만 우리의 토착 신앙을 다 때려부수었고, 한문권에서 이탈하고, 차茶의 세계에서 이탈한다.
미국의 대학들에는 동양학 연구소가 있다. 그 동양학 연구소의 선생이 열 명이라면 여섯 명은 중국을 연구하고, 네 명은 일본을 연구한다. 한국을 연구하는 선생은 없다. 또한 미국에서 한국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말은 배우기가 어렵고 또 다시 한자도 배워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조선조 이상의 자료들은 한문으로 되어 있다. 일본어를 배운 학생들은 한자도 읽을 수 있지만 한국어를 배운 학생들은 고전을 읽기 위해 또 다시 한자를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한국이 동양의 한문권에서 완전히 고아가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위축되고 있다.
그리고 또 근래에는 중국의 홍차와 일본의 녹차 사이에 패권 쟁탈전이 한창이다. 일본의 녹차는 한국에서 불교와 함께 가져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교를 억압하면서 차도 억압했다. 우리는 아시아에서 커피를 제일 많이 소비하는 나라이다. 이제 우리는 문화의 고아가 되어 버렸다.
일본의 성취 지위와 한국의 생득 지위
길트(Guilt) 문화, 세임(Shame) 문화, 즉 죄의 문화, 수치 문화라는 것이 있다. 베네딕트는 이것을 기초로 서양 문화는 길트 문화라고 하고 일본, 동양은 셰임 문화라고 했다.
서양 사람들에게 행동의 기준이 되는 것은 '양심'이다. 양심에 비추어 가책이 안 되면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는 여든이 넘은 노인이라도 빨간 옷을 입고 싶을 때,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가책이 느껴지지 않으면 입을 수 잇고 실제로 입는다. 그것이 길트 문화라는 것이다. 양심이라는 것이 절대 진리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양심이라는 것이 절대 진리요,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 사람들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에, 행동의 기준은 다른 사람의 이목이다. 동양의 그런 문화를 셰임 문화라 한다. 그래서 동양인들은 남을 의식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남이 안 볼 때와 볼 때의 행동이 다르고, 길트 문화에서는 남이 보든 그렇지 않든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국화와 칼>에는 이런 것으로 일본과 미국을 비교 설명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인류학에서는 그것에 대한 반론으로 이런 예를 들기도 한다.
동양에서 입시생은 어머니가 베푼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일종의 죄책감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한다. 대학에 가지 못하면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할 것 같은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의 죄의식이지 어떻게 수치심이냐는 것이다. 따라서 서양이 셰임 문화이고 동양이 길트 문화라고 반박한 학자도 있었고 궁극적으로 길트와 셰임은 같은 맥락이라고 본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일본과 미국을 비교한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베네딕트는 동양적인 것, 일본적인 것을 이해하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했다. 또한 그 나름대로 의리, 은혜 사상, 충의 개념이라든지 특히 의리 중에서도 이름에 대한 의리, 친구와 사회에 대한 의리에 대한 복잡하고 다양한 것을 이해하려고 매우 노력했다. 그러나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일본의 일부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은 될 수 있을지언정 일본의 종합적인 면을 파악하는 데는 불충분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서양인의 한계일 것이다.
<국화와 칼>을 통해 일본을 단편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면 이제 구체적인 예를 통해 일본과 한국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해 보자.
삼남일녀를 둔 아버지가 땅 열두 마지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것을 아이들에게 상속을 해 줘야 하는데, 전통 한국식은 딸을 제외시키고, 큰아들, 둘째아들, 막내아들순으로 6 : 3 : 3으로 배분한다. 큰아들에게 더 많은 재산을 상속하는 것을 장자 우대 불균등 상속이라고 한다. 장자에게 더 많은 재산을 상속하는 이유는 부모를 모시고 살 의무가 큰아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요한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의 의무가 큰아들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재산이 많은 집의 경우 그 아들을은 비교적 균등하게 재산을 분배받았다. 즉 5 : 3.5 : 3.5로 준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재산이 충분하지 않은 집에서의 재산 분배는 대체로 큰아들에게 집중하는 식이었다.
중국은 절대 공평하게 준다. 철저한 균분주의다. 만약 나누기 어려운 것이 있을 때에는 가치 균분을 한다. 그러므로 재산을 나누어 갖는 과정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었다. 다른 예로 우리는 큰아들이 이민을 가게 되면 위패를 가지고 가기 때문에, 둘째, 셋째아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중국은 자녀 수만큼 위패가 많은 경우도 있다. 중국은 부모가 죽기전까지는 다같이 사는 확대 가족이다. 그리고 우리처럼 큰아들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는 것을 직계 가족이라고 한다.
일본은 단독 상속이다. 모든 재산은 큰아들에게 집중된다. 그래서 일본도 직계 가족이다. 그러나 일본의 가족 제도는 대나무같이 한 가닥, 한 가닥으로 내려가고 우리는 소나무같이 줄기와 가지가 있다.
상속 제도에서 일본과 우리는 큰 차이가 있다. 일본은 아들들이 시원치 않으면 아들 이외에 '아토토리'를 결정한다. 사위나 조카 혹은 친인척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아토토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서 엄청난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본의 근대화를 빠르게 진척시킨 동인이다.
근대 사회와 봉건 사회의 차이점은 봉건 사회하에서는 주어진 신분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는, 즉 생득 지위였지만 근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출생 배경이 어떠하든 노력 여하에 따라 지위를 성취할 수 있는, 즉 성취 지위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생득 지위가 우세하고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재벌들이다.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막기 위해서 아시아에서 파트너를 찾던 영국은 청일전쟁의 승리국을 파트너로 삼기로 하였다. 그런 영국은 당연히 중국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뜻밖에 청일전쟁의 승리국은 일본이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성취 지위 때문으로 본다. 중국은 생득 지위였던 것이다. 그래서 청일전쟁을 성취 지위가 생득 지위를 이긴 전쟁이라고도 한다. 일본은 계속해서 이것을 연습해 왔으나 우리는 아직도 못하고 있으며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근대화의 문제이다.
그리고 일본은 전통적으로 여자도 두 번 결혼할 수 있지만 여자는 남자가 싫다고 하면 집을 나가야만 했다. 따라서 남자가 '아토토리'가 되기 위해서 경쟁하듯이 여자도 경쟁을 한다. 우리와의 차이점은 일본 여성은 남편이 능력이 없어지면 남편을 버리지만 한국 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우리에게는 오복 제도라는 것이 있어 상을 당했을 때 3년복, 1년복, 6개월복, 3개월복을 한다. 만약 우리 나라에서 한 남성이 입양되어 그 양부모가 죽었을 때에는 3년복을 하고 친부모가 죽었을 때에는 1년복을 하는 등 입양되더라도 친부모와의 관계는 끊지 않았다. 이에 비해 일본은 일단 '아토토리'가 되면 자신의 본가와는 관계를 끊어 버린다. 우리 사회 일각에 근대 이후의 많은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공사를 구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의 '아토토리' 제도를 관심 깊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일본과 숙명적인 관계이다. 따라서 일본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일본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일본어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하지만 일본말을 아는 것과 일본 문화를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는 일본 문화에 대해 많이 알고 또한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우리가 일본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저작임에 분명하다.